숨어있기의 역사는 숨바꼭질부터 시작된다. 숨바꼭질. 술래인 아이가 눈을 가리고 숫자를 세는 동안 나머지 아이들은 꼭꼭 숨었다가 술래가 모두 찾아내면 끝나는 놀이.
나는 단체 게임에서 대부분 깍두기였지만 숨바꼭질에서는 시라소니 같은 어린이였다. 같은 편에 폐를 끼치지 않고 결정도 패배도 혼자 겪으면 된다는 점이 나를 용감하게 만들었달까. 장소를 은밀하게 바꿔가면서 설마 여기에? 하는 틈에다가도 몸을 구겨 넣었다. 땀으로 흥건해진 손바닥을 거푸 바지에 닦고 심장이 귀에서 펄떡이는 것 같았지만 숨어있는 동안은 묘하게 안전한 기분이었다. 내가 나를 보호하고 있는 기분. 끝내 나를 찾지 못한 술래가 “못 찾겠다 꾀꼬리”를 외쳐도 못 들은 척 조금 더 숨어있던 건 비밀이다.
골목이 모두 사라진 도시를 전전하면서 나는 맞지 않는 토양에 식목된 것 같았다. 건물과 건물을 실뜨기하는 전깃줄처럼 이 건물에서 밥을 먹고 저 건물에서 잠을 잤다. 이따금 돈을 내고 식물을 구경하러 갔다. 식물이 있는 빌딩은 사방이 유리라서 모든 것을 반사하다 사람의 욕망을 비추기도 했다. 사회는 내 최선과는 무관한 것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닐까. 자신이 겪었던 부당함을 대물림하는 선배, 오랜 노하우를 몇 마디 부탁으로 편취하려는 동료, 요구하는 의식과는 상충하는 문화를 가진 회사, 동네를 함부로 대하는 이웃들로부터 나는 숨고 싶었다. 숨고 싶은 충동은 서서히 곪아가다 진물을 터트리고 온몸을 펄펄 끓게 만들었다. 응급실에 누워 멍하니 떨어지는 수액을 보는 밤마다 천장에 작은 ‘틈’을 만드는 상상을 했다. 아무도 나를 찾지 못하는 안전하게 숨을 수 있는 작은 틈을. 그곳에 내 몸을 구겨 넣고 싶었다.
숨고 싶은 충동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지난 6월에 나는 그와 ‘정말로’ 이별했다. 플라타너스 잎이 바람에 흔들리고, 참새가 오디를 쪼아먹고, 햇빛 아래 간간이 손부채를 부치는 날이었다. 그 초여름에 나는 자주 호수공원을 걸었다. 걸을 땐 도시의 소음이 싫어 이어폰을 끼는데 평소에 듣던 음악 대신 다큐멘터리를 들었다. 알아듣지 못하는 영어 내레이션과 동, 식물 소리가 답답한 안부들ㅡ“좀 어때? 괜찮아?”ㅡ로부터 나를 숨 쉬게 해주었다. 그 소리에 무심코 빠져들어 회화나무에서 노래하는 분수까지 걷고 또 걸었다.
야생에서 늑대를 마주친 카리부들은 호수로 달아납니다. 사방이 트인 곳에선 위험 요소를 알아챌 수 있죠. 탁 트인 호수에선 카리부가 늑대보다 빨리 달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늑대는 카리부들을 다시 숲으로 몰아갑니다. 몰아가는 동안 카리부들을 시험합니다. 무리에서 이탈하는 약한 녀석을 찾기 위해서죠.☾
사랑하는 것을 잃은 사람은 삶에서 이탈한 사람이다. 나를 둘러싼 사물이, 사람이, 낮과 밤이 나의 상실과는 상관없이 나를 지나쳐 가는 것을 지켜본다. 그러다 잊혀진 줄 알았던 감정들ㅡ마음의 상처와 모욕, 따져 묻고 싶은 원망, 알 수 없는 공허, 오래된 후회들ㅡ이 무서운 기세로 밀어닥치면, 무작정 걷는다. 걷는 동안에는 내가 풍경을 지나쳐 가니까.
밤이 되면 너무 많은 꿈들ㅡ너무 많이 쫓기는 꿈, 너무 많이 쫓아가는 꿈, 너무 많이 소리치지만 목소리가 안 나오는 꿈, 너무 많이 좁은 곳에서 나가려는 꿈ㅡ이 나를 피로하게 만들었다. 그러면 벌떡 일어나 집안을 강박적으로 청소했다. 문득 뭔가를 잃어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는데 아무리 쓸고 닦아도 그게 뭔지 알 수 없었다. 그건 영영 찾을 수 없는 기분이었다.
우리는 시끄러운 펍에서 뛰쳐나와 강변을 걷고 싶거나 파티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면서도 집에 있고 싶은 기분을 안다. 타인으로부터 깊은 상처를 입고 이해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거나, 불안전한 상태가 오래 지속될 때 숨고 싶어지기도 한다. 물리적인 상태만이 아닌 마음의 상태가 혼자 있기를 결정하는 것은 나와 주변 사람들 사이에 친밀함과는 관계없이 자신을 보호하고 싶은 욕구이다. 이 당연한 욕구를 따라 우리 자신을 보호하지 못할 때 우리는 불행해진다. 파스칼은 우리들의 불행은 거의 모두 자기 방에 머물러 있을 수 없었던 데서 생긴다고 했다. 불행이 자기만의 방에 있지 못하는 데서 온다면, 행복은 자기만의 방에 있을 때 온다는 뜻이 된다. 슬픈 사람은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 카리부가 위험 요소를 알아차리기 위해 호수로 가는 것처럼 그곳은 내게 슬픔을 알아차리는 공간일 것이다. 쉬고 싶은 공간이기도 하다. 휴식은 슬픔을 긴밀하게 도와야 하므로.
좋아, 숨어있을 계획을 세우자. 나는 이 슬픔이 서서히 곪아가다 사랑을 피부로 느끼지 못할까 봐 두렵다.
제주행 편도 비행기. 착륙을 알리는 안내방송에 내 이마를 창에 가져다 대었다. 청명이란 단어가 섬이라면 제주겠지. 고층 아파트 없는 수평의 땅, 바깥은 바다밖에 없는 섬. 이토록 아름답고 혼자인 섬을 바라보면서 나는 안전해진 기분이 들었다.
차를 몰아 공항에서 1시간 떨어진 동쪽 마을로 향한다. 마을 입구에 불 꺼진 해녀회관을 지나 파도의 뒤척이는 냄새와 어두운 그림자들이 일렁이는 골목에 들어선다. 무밭에 둘러싸인 작은 돌집. 돌집 앞에 나는 돌처럼 서서 숨바꼭질을 시작한다. 온기도 없고 소리도 없는 빈집을 혼자 청소하고 있는 사람. 그 사람을 부르며 비밀인 듯 말했다.
“숨어지내는 동안 슬퍼했으면 좋겠어.”☾
흰 고양이가 스쳐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