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냄새 때문에 점점 잘려 나간다는 은행나무에 마른 가지가 매달려있다. 구글 지도에는 안 보이는 작은 상점들. 중고 바이닐샵에서 기웃거리다가 카페의 빵 냄새를 참지 못하는 날엔 두 손에 마들렌이 들려있었다. 사람들에게 잊힌 듯한 우체통은 곧 화실에 다다른다는 반가운 신호였다. 희끗희끗한 80년대식 타일 건물. 유리문에 ‘실화’ 두 글자가 붙어있다.
화실 화장실에는 벌레가 자주 출몰했다. 건물의 나이를 생각하면 그럴 수 있는 일이라 창문을 열어 벌레가 탈출할 길을 만들어주곤 했다. 대부분 순식간에 자취를 감춰버렸는데 바퀴벌레만은 예외였다. 마치 제 역사는 이 건물과 함께이고 너는 곧 사라질 존재라는 듯 고요하고 신중했다. 바퀴는 변기 뒤쪽 바닥의 어둠 속에서 긴 더듬이를 미세하게 움직였다. 그 모습을 응시하는 내 목덜미에도 공포가 더듬더듬 올라왔다. 내가 아는 바퀴는 몸통이 반으로 잘려도 전진하고 여차하면 날개를 가위처럼 펴는 호전적인 종족이었지만 고요한 바퀴는 무게감마저 느껴졌다. 나는 반사적으로 슬리퍼 한쪽을 벗어들었다. 다른 벌레처럼 창문을 열어줄 수도 있었지만 죽이려고 했다. 바퀴를 왜 죽여야만 하는지 모르는 채 죽여야 한다는 생각만 있었다.
7월. 거리의 은행나무는 돌보지 않은 묘처럼 무서운 속도로 무성해졌다. 나는 그 사람의 잘못을 그 사람이 책임지도록 하고 싶었다. 변호사는 그가 내게 한 잘못이 더러운 짓이라고 유창하게 말했다. 경찰은 그에게 훈계한 기록을 남겼고, 검찰은 벌금으로 계도했다는 서면을 보냈다. 처벌의 근거로 언급되는 이유들, 그를 미워해야 마땅하다는 이유들을 나는 들었다. 내가 사랑한 사람이 나를 가해한 사람이 되는 것은 기이하다. 그 사람의 잘못을 설명하고 들으면서 왜 내가 수치심이 드는걸까. 그들이 사리에 맞는 일을 했다는 걸 의심하지 않는다. 다만 한 사람의 사정을 사건 안에 압축해서 사무적으로 ‘처리’하지 않는 윤리에 대해 생각했다. 그 모든 비난의 말들을 나는 마음의 바닥에서 더듬거렸다. 고요하고 신중하게.
법원 주차장에는 자동차들을 수호하듯 은행나무가 늘어서 있다. 바람이 불어 잎끼리 부대낄 때마다 바퀴벌레 날개짓하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 아래에서 나는 자주 어지러웠고 머릿속에는 화실 생각이 맴돌았다. 화장실 창문의 뻑뻑한 마찰음, 변기 뚜껑에 붙은 펭하!스티커, 시멘트벽에 붙여놓은 꽃 그림, 유리문 글자를 읽는 장난스러운 표정들… 생각의 대부분은 의식이 아닌 무의식에서 나오고, 우리는 사실이 아닌 무의식적 추론 내에서 사고하며 세상의 언어를 이해한다☾고 언어학자는 말했다. 나의 머릿속은 여름의 땡볕 아래 같았다. 모든 것이 끈적하고 피로해서 제자리에 없었다. 법원을 나와 은행나무를 등지고 섰을 때 어지러움을 견디며 그 사람을 생각했다. 이제 나의 무의식에서 바퀴벌레는 그를 의미했다.
1월의 그는 내게 ‘삶’이었다. 그를 떠올리면 삶의 모든 이야기가 재생되었다. 그 사람 생각을 멈추는 것은 삶이 멈추는 일이었다. 7월의 그는 1월의 그와 같은 사람이었지만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는 나빠서 잘못된 행동을 저지른 건가 아니면 잘못된 행동을 해서 나쁜 사람이 된 건가. 잘못을 처벌한 후에도 사는 동안 혐오해야 할 사람인가. 복잡했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바퀴벌레보다 내가 두려운 것은 혐오였다. 사실 나는 바퀴벌레를 무서워하는 편도 아니고, 고양이를 키우거나 화실 건물의 청결을 책임져야 하는 입장도 아니었다. 단지 바퀴는 혐오스러우므로 죽여 마땅하다고 여겼다. 그런 식으로 내게서 배제하고 죽인 것들을 생각해 본다. 전철역 플랫폼 위에 비둘기, 장판 밑에서 나오는 개미 떼, 쩝쩝거리며 먹는 직장동료, 깃발 들고 단체로 모인 사람들… 모두 존재를 섬세하게 상상해보지 않고 ‘그냥 싫은’ 혐오의 마음이었다. 그런 마음은 대개 단색이었다. 우리 편은 옳은 사람, 남의 편은 나쁜 사람이란 진영 논리처럼 단순하지만 확신에 찬 혐오의 색. 그 혐오가 사람을 향하는 것이 두렵고, 사랑을 향하는 것은 내 탓인 것만 같았다.
어떻게 사랑을 미워해야 하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모르는 건 사람을 두렵게 하니까 조금은 알 것도 같은 사실을 믿기로 한다. 사람이, 사랑이 그렇게 단순한 색일 리 없다. 눈물의 색, 기쁨의 색, 미움의 색, 연민의 색… 모든 색의 빛이 모인 흰빛에 가깝지 않을까. 그 빛의 파동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닿기도, 들리기도 한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그래서 변기 뒤쪽 바닥 같은 어둠에서도 잠식되지 않고 나의 존엄을 비출 수 있는 것이라고.
나는 눈을 감고 바퀴벌레를 생각했다.
그리고 닫힌 창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