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에는 바람이 불고 있다. 아니, 바람을 버티고 있는 섬이라고 해야겠다. 마당의 야자수들이 소문자 알(r)처럼 구부러졌다. 나는 여행자의 말이 차라리 인사하는 소리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여기서든 저기서든 사랑이 뭔지는 잘 모르겠어요. 사랑을 잊은 적은 없어요.”
어떤 사랑이 더는 사랑이 아니라고 여겨본 적 없다. 사람이 곧 사랑이라고 생각하면 불행하지만 사랑은 거기에 영원처럼 존재하니까. 눈을 감고 한 장면을 떠올리면 몽글하거나 뭉클해지는 아름다운 기억들은 머물러야만 한다.
“제주처럼 이상적인 말이네요.”
그 말속에는 ‘제주에 사니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거지’란 뉘앙스가 느껴졌다. 나는 조용히 ‘이상’이란 단어를 만지작거렸다. 당신은 마을마다 비석이 있는 파라다이스를 본 적 있을까. 차마 그 일을 안다고 입에 올릴 수도 없는 그러면 목구멍에 시꺼먼 동굴이 생기는 이곳은 누군가의 밤을 뒤척이게 하는 섬이기도 하다. 섬이 곧 행복이라고 생각하면 슬퍼진다. 행복하다고 해서 슬픔의 역사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이상(異狀)의 또 다른 뜻은 ‘서로 다른 모양’이다. 단어도 사람도 손바닥이 있으면 손등이 있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손일 것이어서 우리가 서로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온기를 나누어 주는 일. 나는 내 쪽에선 생각과 당신 쪽에선 생각 그리고 수없이 다른 생각들을 나누는 대신 물을 끓였다. 그리고 말했다.
“바람이 차네요. 차 한 잔 하시겠어요?”
『어딘가 아름다운 기분』
13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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