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자 할머니네 돌담 앞에 사람들이 북적인다. 광활한 무밭뿐인 마을에 무슨 일이 생겼는가. 대낮에ㅡ밭이나 바다에 가지 않고ㅡ집에 있는 건 동네 개들과 나뿐인데. 나는 소란에서 멀어질 요량으로 집을 나섰다.
돌담은 오후 태양색 능소화로 뒤덮여 있었다. 지나던 사람들이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섰다. 순서가 되면 뒷사람이 앞사람을 찍어주기도 하고 찍히는 사람은 찍는 사람에게 이런저런 요구를 하기도 했는데 기다리는 시간에 비해 사진을 찍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들은 뭘 기념하고 싶은 걸까. 꽃에 둘러싸인 나? 꽃으로 덮인 돌담에 다녀온 나? 가던 길을 멈추고 꽃을 보는 나? 발길을 세우는 아름다움이라고 한들 자신의 차례가 지나면 서둘러 떠나겠지. 여름이 그런 것처럼.
“그만이 해시믄 돼서!”☾
경자 할머니는 어차피 떨어질 텐데 아름다움이 다 무슨 소용이냐며 불평스레 주변을 비질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을 내쫓지는 않았다. 능소화가 사람이면 단명(短命)이라면서 꽃을 모아 화로에 꽃을 쓸어 넣을 뿐.
나는 타들어 가는 꽃을 바라보면서 당신을 생각했다. 말라버린 믿음과 병들어 갈색으로 변한 마음. 미움, 원망, 그리움, 후회, 절망을 쓸어모아 태우고 싶다고 생각했다. 어떤 사람은 시절이란 이름으로 부른다고 해서 기념사진 같은 것이 되지 않으니까. 이거 어디에 쓸 수 없겠냐고 쓰레받기를 들어 보이는 할머니에게 나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떨어진 꽃은 모두 상처 입어서요.”
나는 능소화의 상처를 알고 있었다. 봉오리가 맺히는 진심, 몇 단어로 정의할 수 없는 감정, 지키는 마음과 추락하는 고통을 알았다. 땅바닥을 나뒹구는 꽃들이 왜 그토록 불편하고 슬퍼 보이는지도.
젊은 날의 삶은 다른 삶을 준비하기 위한 삶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를 위한 삶이기도 하며, 어쩌면 가장 아름다운 삶이 거기 있기도 하다.☾
어쩌면 가장 아름다운 능소화 한 송이를 불꽃 속으로 던진다. 하늘로 상승하는 연기를 보며 다이빙하듯 두 손을 모으며 빈다. 오늘의 상처를 아는 채로 내일을 사랑하게 해달라고. 때론 아름다움이 없고 울음만 가득할지라도 상처를 모르고서는 아무것도 사랑할 수 없으므로. 당신은 내 삶을 뜨겁게 불태워 버렸지만, 사랑은 남았다. 늦여름의 실바람이 불어오는 한 가운데 사랑만 남은 것이다. 끝이 있지만 끝도 아닌 연기가 하늘에 번지고 있다. 나는 돌담을 쓰다듬으며 빈 골목을 되돌아 나간다.
여름이 지나려면 더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