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반듯한 남자의 실루엣을 상상했다. 겉옷을 잘 정리해 의자에 걸어두는, 좁은 통로를 지날 때 먼저 양보하는, 손을 닦으려 손수건을 꺼내는 남자의 실루엣을. 그와 만나기로 한 식당은 까다롭지만 유세하지 않는 공간이었다. 이런 공간에 있으면 중요한 무언가를 아는 사람이 된 기분이다. 평소처럼 젓가락을 떨구거나 국물을 흘리지 않도록ㅡ유구한 역사를 지닌 젓가락일 것 같으니까ㅡ긴장하게 된달까.
그는 눈 내리는 창가 대신 어둡고 등받이 낮은 다찌로 나를 에스코트했다. 그곳에 둘러 앉은 사람들의 얼굴이 여유로워 보였다. 서로의 ‘친밀한 거리’☾로 가는 사적 단계를 훌쩍 뛰어넘을 줄 아는 기술자처럼. 정면에서 불을 부리고 있는 요리사가 분위기를 한몫 거드는 듯했다. 나는 작은 확신이 하나 들었다. 잠시 후 메뉴판을 내려놓으면 그와 내가 비슷한 요리를 주문할거라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농담했다.
“여기 경력자 우대 좌석이에요?”
취향의 유사함은 농담의 유사함이니까.
그는 동그래진 눈을 몇 번 껌뻑거리다가 이내 눈가에 주름이 만들며 대답했다.
“네, 전무 이상만 모십니다.”
농담이 통하는 사람은 영혼이 통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구김 없는 앞치마를 두른 종업원이 생선요리를 가져왔다. 남자는 요리를 자기 앞으로 끌어당기더니 가시를 바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날씨 얘기를 하듯 말했다.
“메로에서 두 쪽 밖에 나오지 않는 부위가 있거든요.”
까다로운 취향을 가졌지만 유세하지 않는 사람은 드물다. 그런 사람과 있으면 여러 색을 겹겹이 칠한 그림 한 점이 가슴에 물드는 것 같다. 물든다는 건 하나로 섞인다는 말☾이다.
“이게 제일 맛있는 살이에요.”
내 앞접시에 흰 살 한 점을 올려놓은 후 그는 다시 생선을 손질했다. 나는 젓가락을 접시로 가져가면서 생각했다. 이제 테이블 위의 저 생선은 세상의 수많은 생선 중에 가장 의미 있는 생선이 되었다고.
어쩌면 의미가 없는 곳에 의미를 만들어 넣는 일이 사랑일지도 모른다. 형태도 쓰임도 모호한 그러나 찬란한 의미를 가슴에 새기는 일. 삶에는 자기 자신이 부여하는 의미 이외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한 에리히 프롬은, 사랑과 삶의 의미가 자주 같은 뜻이 되버린다는 것은 알았을까.
『어딘가 아름다운 기분』
1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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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Edward. T. Hall)이 주장한 사람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거리가 있다는 이론이다. 거리는 4단계로 나뉘는데, 그중 1단계가 ‘친밀한 거리(0-46cm)’이다. 대개 가족이나 친한친구, 애인, 반려동물과의 거리로 매우 친밀한 유대관계가 전제되어야 이 거리가 가능하다.
☾ 이현호, 「붙박이창」, 『라이터 좀 빌립시다』, 문학동네(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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